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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박물관의 한국관은 왜 초라할까?

时间:2024-03-29 16:49:34 出处:오락읽기(143)

유럽 박물관의 한국관은 왜 초라할까?

영국 캐임브리지대에 있는 피츠윌리엄박물관의 한국 전시품 안내 카달로그. 이 박물관에는 일제강점기 때 영국 회사원이었던 고드프리 곰퍼츠 부부가 수집한 수준 높은 고려청자 400여점이 전시돼 있다. photo 피츠윌리엄박물관최근 미국 보스턴미술관 소장 고려 사리구와 고승의 사리가 한국으로 반환됐다는 기사가 한국 언론에 나왔다. 14세기 제작된 은도금 사리구와 사리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반출된 후 1939년 보스턴미술관이 야마나카상회라는 일본 고미술상으로부터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출처와 반출 경로는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귀중한 우리 문화재가 85년 만에 타향살이를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온 셈이다. 거의 600년 전 제작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 미술사적 가치도 상당한 문화재다.이런 문화재의 귀향을 두고 언론은 경사가 난 듯한 분위기다. 그러나 이런 해외 소재 문화재 반환이 무조건 이루어져야 하고, 반환을 과연 경사로만 볼 일인지 한번 의문을 가져보고자 한다.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는 뜻이다. 만일 이런 유물이 한국에는 없고 외국에만 있는 것이라면 당연히 반환을 추진해 볼 정당성이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같은 것이라면 말이다. 현존하는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이니 한국에 반드시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 또 외국인들에게는 별 가치가 없으나 우리 민족에게는 특별한 가치가 있는 최초의 태극기 원형 같은 유물이라면 열성을 다해 찾아와야 한다. 그러나 한국 내에도 많이 있는 유물이라면 왜 굳이 찾아와야 하는지 한번 의문을 품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물론 우리의 귀중한 유물이 해외 부자들의 개인 수장고에만 처박혀 있으면 안 된다. 그러나 출처가 한국이라는 것만 제대로 밝히고 공공박물관에서 전시만 해준다면, 월급 안 주고 파견한 외교관 같은 역할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진짜 잘난 자식이라면 품에만 끼고 있을 게 아니라 세상에 내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발상의 전환을 할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초라한 영국박물관 한국관유럽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유럽 박물관을 다녀와서는 "왜 유럽 박물관의 한국관은 그렇게 초라한가?"라는 말을 많이 한다. 유럽의 한국박물관은 중국관과 일본관에 비해 너무 작고 전시품도 초라한 건 분명 사실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물이 조금 더 큰 공간에서 자랑스럽게 더 많이 전시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안타까움이 생긴다.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 한국관은 유럽 박물관 중에서는 가장 큰 공간에 한국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한국관은 영국박물관이 자진해서 만든 것이 아니다. 기업인인 화정 한광호 박사가 1997년 기부한 100만파운드(현 시가 180만파운드·약 31억원)를 자금으로 영국박물관이 현재의 자리에 한국관을 만들었다. 그러나 같은 런던 내에 있는 실내장식과 가정용품 그리고 장신구품 전문 박물관인 빅토리아앤드앨버트박물관(V&A)의 한국관은 독립관도 아니다. 일본관과 중국관 입구 양옆의 벽에 초라하고 궁색하게 흡사 셋방살이하듯 있다. 진열장도 없이 그냥 벽에 붙여 전시돼 있는 형편이다. 이마저도 삼성가의 홍라희 여사가 경비를 대고 주도해서 만들어낸 공간이다.그렇다면 유럽 박물관의 한국관은 왜 모두 공간이 협소하고 전시품이 초라한가? 주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첫째는 박물관들이 가진 한국 유물이 빈약해서다. 물론 한국에 대한 관심이 그동안 크게 없어서 수집을 안 한 탓이 제일 크지만 동시에 독지가들의 유물 기증과 기금 기부가 거의 없어서이기도 하다.유럽 박물관들의 수장품은 박물관이 나서서 모으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독지가들이 수집품을 기증해서 이루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유럽인들 중 한국 유물을 집중적으로 모은 독지가는 드물다. 그래서 유럽 박물관에는 우리 유물이 적을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우리 한국인들은 해외에서 한국 유물을 구입하면 무조건 한국으로 가져와야 하는 줄 안다. 한국인이 해외에서 구한 한국 유물을 외국 박물관에 기증하면 거의 매국노 취급을 받지 않겠는가? 해외에 있는 유물을 한국으로 가지고 오는 것에 대해 '반환'이라는 용어를 쓰는 걸 봐도 우리가 해외 소재 유물을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해외 박물관이 한국 유물을 많이 보유해서 한국관을 늘리고 제대로 대접받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피츠윌리엄박물관의 한국관. photo 피츠윌리엄박물관네덜란드 도자기박물관의 고려청자영국박물관 내의 전시품 중 고려 철불은 한국에도 몇 개 없는 진귀품이어서 눈에 금방 띈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 전시된 고려청자는 감히 고려청자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조악하다. 고려가 거의 망해가던 후기 작품인 듯하다. 한국 가을 하늘을 닮은 고려청자의 비취색이 전혀 보이지 않고, 거의 회색이 섞인 듯해서 침울한 영국 겨울 하늘 같은 청자이다. 이를 두고 우리가 세계에 자랑하는 비취색의 고려청자라고 할 수는 없다. 한국중앙박물관 수장고에만 모르긴 몰라도 수만 점의 고려청자가 보관되어 있을 터이다. 2005년 태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수만 점을 비롯해 전시할 공간도 없이 지하 수장고에서 햇빛을 못 보고 있는 수만 점의 고려청자 일부만이라도 장기 임대 형식으로 해외 박물관에 전시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는 없을까?국보급 고려청자를 우리가 보관만 하고 있으면 국부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팔아 국고를 늘릴 수도 없다. 그냥 국립중앙박물관 창고 공간만 차지하고 관리비만 들 뿐이다. 고려청자, 백자, 분청사기 같은 훌륭한 유물을 팔자는 것이 아니다. 해외 박물관에 장기 임대를 해서 거기서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선양하는 것이 우리 수장고에 아무런 효용 없이 처박아 놓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으냐는 말이다. 혹은 해외 박물관과 협약으로 서로의 유물을 교환 전시하는 방법도 좋지 않은가? 조금 더 과격하게 얘기한다면 적의 심장부인 박물관(박물관은 가히 그 나라의 심장부라고 할 만하다)에 우리 청자, 백자, 분청사기들이 들어앉아 우리의 아름다움을 자랑할 수 있다면 굳이 우리 돈을 들여 우리를 홍보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자신들의 돈으로 관리하면서 우리들의 문화를 선전해 주니 말이다.예를 하나 들자. 필자는 수년 전 세기의 팜므파탈 스파이 마타 하리의 고향 네덜란드 레이우아르던시의 프린세스호프 도자기박물관(Ceramics Museum Princessehof)에서 감전당한 듯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박물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특산의 청색 무늬 델프트(Delft) 도자기를 중심으로 한 도자기 전문 박물관이어서 세계 각국의 도자기를 정말 알차게 수집해서 전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시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2층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정중앙에 고려청자 한 점이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고고하게 전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멀리서 봐도 알 수 있는 고려청자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려 상감청자 한 점만을 담고 있는 진열장 주위에는 아무런 전시품도 없었다. 전시장 중간에 청자 진열장 하나만 달랑 있었다. 그리고는 4~5m 떨어진 벽 사면으로 돌아가면서 다른 도자기들이 구경꾼처럼 전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큰 교실만 한 공간 중간에 단 하나의 고려청자만 거만하게 전시되어 있었다는 말이다.이 고려청자는 국보 제68호인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靑磁 象嵌雲鶴文 梅甁)을 닮아 있었다. 매병의 모습이 실크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모습 같았다. 과도하게 조그만 머리 격의 작은 입술과 거기에 비해 너무나 넓은, 하늘이 만든 아름다운 곡선, 여인의 어깨와 같은 매병의 어깨…. 마치 여인의 가냘픈 전신을 감싸듯 내려뜨려진 비단 파티 드레스를 입은 귀족 여인 같았다. 매병은 '나를 보라!'는 듯 우아한 자태를 뽐내면서 도도하게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도자기의 나라 네덜란드의 전문 도자기 박물관마저 우리 상감청자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는 굳이 설명문을 읽지 않아도 알 만했다.이 박물관이 작성한 설명서는 '고려가 송나라가 인근 국가에 가르친 비취 색깔의 청자 기법을 가장 잘 배워 발전시켰다'고 기술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고려는 '흰색의 흙을 새겨 넣은 상감(象嵌) 기법으로 발전시켜 스승인 송나라보다 더 훌륭한 유일한 청자 생산국가였다'고 설명했다. 한국 내에는 수만 점이 있는 고려청자 한 점이 이렇게 우리를 대신해 수만 리 밖의 네덜란드에서 네덜란드인들은 물론 세계 각국의 관광객에게 우리 문화를 자랑하고 있었다. 필자가 세계 박물관 어디를 가서도 이렇게 자랑스러운 충격을 받은 적은 없었다.또 있다. 영국의 한 박물관 한국관에서도 필자는 향수와 함께 긍지를 느낀다. 바로 세계 최고의 명문 대학인 케임브리지대학교 소속 피츠윌리엄박물관의 한국관이다. 피츠윌리엄박물관의 한국관은 주위의 중국관과 일본관을 수하로 거느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유럽 박물관에 가면 한국 유물이 별로 없고 독립관은 생각할 수 없는 곳도 많다. 대개 아시아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 유물들 옆 귀퉁이를 그냥 조금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피츠윌리엄박물관의 아시아관은 그 반대이다. 고려청자가 공간의 거의 70~80%를 차지하고 중국과 일본 유물이 귀퉁이로 밀려나 있다.국보 제68호인 청자상감운학문 매병. 네덜란드 프린세스호프 도자기박물관에는 이 국보를 빼닮은 고려청자 한 점이 전시관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photo 뉴시스피츠윌리엄박물관의 최고 수준 고려청자 특히 피츠윌리엄박물관의 고려청자 수준은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다. 박물관 웹사이트가 자랑하듯 '한국 밖에서 가장 훌륭한 고려청자 수집품(the best collection of Koryo celadon outside of Korea)'을 가지고 있다. 여기의 고려청자는 영국박물관 한국관의 영국 겨울 하늘 같은 잿빛의 청자가 아니라 정말 청명한 한국 가을 하늘 위에 흰구름이 떠 있듯 상감의 흰 무늬가 새겨진 최고 수준의 청자이다. 만일 독자 중에서 케임브리지를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피츠윌리엄박물관의 한국관은 반드시 방문해 보시길 강추한다. 필자는 그 고려청자들을 바라보면서 멍때리기를 자주 한다. 그러면서 고국의 가을 하늘을 보듯 향수에 젖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피츠윌리엄박물관의 한국관 청자들은 정말 한국 말고는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수준이다. 이런 최고 수준의 청자 432점은 바로 한 명의 아마추어 청자 애호가에 의해 수집되어 피츠윌리엄박물관에 기증되었다. 바로 고드프리 곰퍼츠(1904~1992)라는 영국인 회사원이 일제강점기 때 조선과 일본에서 수집한 청자들이다. 그는 지금의 영국 셸석유회사 일본주재원으로 도쿄에서 주재하던 중 1927년 조선으로 1년간 파견되었다. 원래 중국과 일본 도자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운명처럼 고려청자를 만나게 됐고, 이후 첫눈에 푹 빠져서 거의 재산을 탕진하면서 집중 수집했다. 그런 그에게 조선이 제2의 고향이 되는 행운도 있었다. 평생의 반려자를 조선에서 만난 것이다. 미국 선교사의 딸 엘리자베스를 만나 조선 파견이 끝나고 같이 일본으로 돌아와 1930년 도쿄에서 결혼했고 신혼여행을 조선으로 다시 왔다. 부부는 매년 여름휴가 한 달을 조선에서 보냈는데 특히 금강산을 너무나 좋아해서 올 때마다 반드시 갔다. 그만큼 부부는 조선과 조선 문화를 사랑했다. 2차대전 발발로 영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수집한 고려청자 일부를 피츠윌리엄박물관에 장기임대해서 전시하게 했다.필자가 처음 박물관에 갔던 1982년에는 이미 영구임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84년 한·영 수교 100주년을 맞아 곰퍼츠 부부는 임대된 청자 428점을 비롯해 중국·일본 도자기를 비롯한 다른 수집품도 전부 기증했다. 만일 이 정도 수준의 고려청자면 한 점당 1억원 이상의 가격이었을 텐데 400억~500억원 가치의 소장품을 아무 조건 없이 기꺼이 기부한 것이다. 부부가 가장 사랑해서 거실과 침실에 두었던 마지막 4점마저도 1992년 부인 엘리자베스가 세상을 뜨자 부인 이름으로 기증하고는 같은 해 곰퍼츠는 엘리자베스를 따라갔다. 그는 1961년 고려청자 책('The Ceramic Art of Korea')을 김재원 박사와 같이 냈고, 1964년에도 혼자서 고려청자 관련 책('Korean Celadon')을 썼다. 1968년에도 고려청자 책('Ceramic Ware')을 내는 등 평생을 고려청자와 같이 지냈다. 또 1961년 런던 V&A박물관에서 유럽 최초로 한국 국보급 예술품 152점의 전시회가 열렸을 때도 곰퍼츠는 당시 초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김재원 박사를 도와 대성공을 거두게 했다.우리가 고려청자의 가치를 전혀 모를 때 곰퍼츠는 평범한 월급쟁이로서 거의 가산을 탕진하듯 수집을 했다. 덕분에 432점의 주옥같은 고려청자가 돈 많은 누군가의 수장고에 처박혀 있지 않고, 이렇게 공공박물관에서 우리 문화를 오늘도 우리를 대신해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곰퍼츠에게 진 빚은 아무리 과장해도 과하지 않다. 한국 정부는 곰퍼츠 후손에게 훈장이라도 수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누구든 우리들의 유물을 수집해 자신의 수장고에 놓고 혼자서만 즐기지 않고, 곰퍼츠처럼 공공박물관에 전시할 기회를 준다면 굳이 우리가 우리 유물을 한국에만 끼고 있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 물론 반드시 곰퍼츠처럼 기증을 할 필요는 없다. 소유는 자신이 하면서 공공박물관에 장기임대하는 것도 투자 겸 사회공헌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곰퍼츠 부부의 고려청자 사랑현재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이 갖고 있는 유물 중 과연 몇 퍼센트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을까? 대만의 국립고궁박물관은 수장품 60만8000점 중에서 엄선된 8000점을 3개월마다 순환 전시를 한다. 이렇게 해도 60년을 해야 다 전시할 수 있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우리 국립박물관은 과연 몇 년이 걸릴까? 그렇게 본다면 영국박물관에 있는 고려청자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청자를 비롯해 이조백자, 분청사기, 신라불상, 불교탱화 등을 해외 박물관에 장기로 빌려줘 전시하게 해도 국내 박물관 전시품이 모자라지는 않을 것이다.영국박물관에는 약 2만3000점의 중국 유물이 있다. 이를 두고 중국 언론은 영국이 약탈해 간 유물이라면서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박물관이 소장한 중국 유물이 많은 덕분에 중국관을 가 보면 수시로 전시품이 바뀐다. 일본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관은 전시품이 거의 바뀌지 않는다. 총 4000여점의 물품이 있다고는 해도 2700여점의 화폐와 현대 예술품을 빼고 나면 제대로 된 유물은 1000점도 채 안 되니 순환 전시할 만한 유물이 없다는 말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박물관의 한국관인데 전시할 유물이 없다는 현실은 참담하다. 영국박물관에는 무려 800만점의 유물이 있고 약 1%에 해당하는 8만점만이 전시된다. 1년 관람객은 400만여명에 이른다. 물론 주요 유물들은 영구히 자리를 잡고 전시되고 있지만 보통은 수시로 전시물이 바뀐다. 그래서 영국박물관은 해외로 대여도 많이 한다. 영국박물관 자료를 보면 1년 평균 3823점이 해외로 대여되고 평균 대여 기간은 5년이다. 그래서인지 영국박물관에 가보면 주요 전시품 자리에 실물과 거의 구별이 안 되는 높은 수준의 복사품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기도 하다. 영국 국내에서도 지방 대여를 많이 하는데 한 시즌 평균 1982점이 대여되고 있다. 이를 통해 영국박물관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효과와 함께 수익도 얻고, 필요하면 교환 대여 혹은 전시도 한다.일본인이 먼저 알아본 고려청자의 가치사실 조선시대에는 고려청자의 존재를 몰랐다. 우리보다 자기에 눈이 더 밝았던 일본인들이 우리 도자기의 가치를 먼저 알아챘다. 해서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보물이 일본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제가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눈 밝은 일본인들은 조선 전국을 뒤지며 고려청자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성에 안 차자 도굴을 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은 눈에 불을 켜고 수집했다. 그전까지 조상 숭배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던 조선에서 조상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은 상상도 못 할 악행이었다. 그렇게 해서 고려청자는 일본인들 덕분에 세상의 빛을 억지로 보게 되었다. 일본인 중에서도 조선 초대총감 이토 히로부미가 가장 많이 수집을 했다. 수천 점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수하를 시켜 보이는 대로 끌어모으라고 해 수천 점을 수집했다. 그중 가장 쓸 만한 청자만 1000점이 넘었다. 고종이 일제가 세운 왕가 박물관을 순시하다가 고려청자를 보고는 어느 나라 작품이냐고 물을 정도로 조선인들은 무식했다. 결국 우리가 우리 것에 무지해서 우리의 보물을 제대로 간직하지 못한 셈이다.곰퍼츠가 고려청자를 수집할 때만 해도 청자 값은 정말 헐값이었을 터다. 해서 평범한 영국 회사원이 432점이나 수집을 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세계인은 피츠윌리엄박물관에서 우리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우리는 경제력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문화를 가진 선진 민족이란 걸 자랑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한국에 대해 무지한 세계인들도 이제 싹이 트기 시작한 K-열풍으로 겨우 한국을 알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갈 길이 한참 멀다. 구미인들은 한 민족을 평가할 때 최종적으로는 문화 수준을 따진다. 훌륭한 문화를 가진 민족만을 정말로 자신들과 괄목상대할 민족이라고 믿는다. 아무리 우리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딴다고 해도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 수준의 문화민족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우리가 문화를 가진 민족이라는 시각을 갖게 해주려면 해외 유명 박물관에 우리의 문화 대사인 아름다운 예술작품들을 많이 내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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